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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요괴

바리데기(捨棄公主) | 저승의 문을 건넌 첫 여신

바리데기(捨棄公主) | 저승의 문을 건넌 첫 여신

누군가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
하지만 그 버림받은 아이가, 훗날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저승의 신(神)이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바리데기, 혹은 바리공주라 불린다.

이 이야기는 한국 샤머니즘의 핵심 신화이자,
인간과 저승을 잇는 영혼의 길잡이에 관한 이야기다.

1. 바리데기의 탄생 — 버려진 공주

옛날, 한 왕과 왕비가 있었다.
그들은 아들을 간절히 바랐지만 연달아 딸만 여섯을 낳았다.
일곱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녀는 또 딸이었다.

왕은 실망했고, 말했다.

> “이 아이는 쓸모없다.
> 저 산 아래 버려라.”

그렇게 태어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한 아기가 산속에 버려졌다.

그 아이가 바로 바리데기였다.
이름 그대로, ‘버려진 아이’라는 뜻이다.

2. 운명의 전환

세월이 흘러, 왕과 왕비는 중병에 걸렸다.
수많은 의원이 약을 지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점쟁이가 말하길, “저승의 샘에서만 구할 수 있는 약이 있습니다.
그 물을 구할 자는, 왕의 혈육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섯 딸 중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그때 한 노인이 말했다.

> “왕이 버린 그 아이, 바리데기가 있다지요.”

버려진 딸, 바리데기.
그녀는 소식을 듣고 아무 망설임 없이 말했다.

> “부모가 저를 버렸어도,
> 자식 된 도리를 버릴 순 없습니다.”

그녀는 그 길로 저승의 샘을 향해 떠났다.

3. 저승으로 가는 길

저승으로 향하는 여정은 수많은 시험과 공포로 가득했다.

첫째 강은 망각의 강
둘째 강은 혼의 강
셋째 강은 죽음의 강

그곳엔 요괴와 귀신, 그리고 인간의 한이 뒤엉켜 있었다.

바리데기는 그들을 물리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사연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이 강물에 떨어질 때마다 길이 생겨났다.

> “누군가의 슬픔을 이해하는 자만이
> 저승의 문을 통과할 수 있다.”

4. 저승의 샘

드디어 바리데기는 저승의 샘에 도착했다.
그곳을 지키는 저승의 왕 염라대왕이 말했다.

> “인간의 몸으로 이곳에 올 수 없다.”

바리데기는 엎드려 간청했다.

> “부모를 살리기 위해 왔습니다.
> 제 생명을 바쳐도 좋습니다.”

그 진심에 감동한 염라대왕은 샘물을 떠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대가로, 영원히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바리데기(捨棄公主) | 저승의 문을 건넌 첫 여신



5. 귀환과 변모

바리데기는 샘물을 가지고 세상으로 돌아왔다.
그 물을 왕과 왕비에게 먹이자 두 사람은 병이 씻은 듯 나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반은 인간, 반은 신의 존재였다.
왕과 왕비는 눈물로 말했다.

> “우릴 살리고, 네가 떠나는구나.”

그녀는 웃으며 답했다.

> “저승의 길이 외롭지 않도록,
> 제가 그 길을 지키겠습니다.”

그리하여 바리데기는 저승으로 영혼을 인도하는 신,
즉, 사자(死者)의 인도자가 되었다.

6. 바리데기 신앙의 의미

바리데기는 단순한 설화 속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모든 무당이 섬기는 근본신(根本神)으로,
“영혼의 길잡이”이자 “생과 사의 중재자”다.

무당이 굿을 할 때 바리데기를 부르는 이유는
그녀가 인간과 신의 경계를 넘은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그녀는 한국의 신화 속에서
가장 인간적인 신이자, 가장 신적인 인간이다.

7. 상징적 해석

 

상징 요소 의미
버려짐 인간 존재의 무가치함과 출발
저승 여행 죽음과 재생의 통로
샘물 구원의 상징
희생 무조건적인 사랑의 완성
여신으로의 변모 인간의 한계룰 초월한 구원


바리데기의 여정은 결국 “버려진 자가 세상을 구한다”는
한국 신화의 핵심 철학을 담고 있다.

8. 현대적 시각

오늘날 심리학적으로 보면, 바리데기의 이야기는 ‘자기 치유의 여정’으로 해석된다.

버려진 상처를 받아들이고, 그 고통을 통해 타인을 구원하는 과정
즉, 트라우마의 승화를 상징한다.

그래서 바리데기의 이야기는 지금도 영적 성장, 심리 회복, 여성 서사의 대표적 상징으로 연구되고 있다.

9. 결말

바리데기는 신이 되었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언제나 인간의 감정으로 끝난다.

> “부모가 나를 버렸지만,
> 나는 세상을 버리지 않았다.”

그 한마디 속에 모든 용서와 구원이 담겨 있다.

 

- 글을 끝내며


바리데기는 한국 신화 속
가장 오래된 요괴이자 여신이다.

그녀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희생으로 태어난 구원의 존재다.

밤하늘에 빛나는 달처럼, 바리데기의 이야기는
오늘도 누군가의 어둠을 밝혀준다.

> “버려진 자가, 세상을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