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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옷의 여인 — 피로 물든 복수의 기억 붉은 옷의 여인 — 피로 물든 복수의 기억 밤거리를 걷다 보면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멀리서 서 있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면, 피처럼 붉은 옷자락이 바람에 흩날린다. 누군가는 그 여인을 따라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없다. 사람들은 그저 이렇게 부른다. > “붉은 옷의 여인.”1. 전설의 기원 이야기의 시작은 조선 후기, 한양 외곽의 작은 마을이었다. 그 마을에는 혼례를 앞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혼인날, 신랑에게 버림받고 비 오는 날 강가에서 목을 매 자결했다. 그날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은 혼례용 붉은 치마저고리였다. 그 이후로, 그 강가에서는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밤마다 서성인다는 소문이 돌았다. > “신부의 한이 ..
거울 귀신 —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 거울 귀신 —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 거울을 본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을 확인하는 일이다. 하지만 만약, 거울 속의 내가 조금 다르게 웃고 있다면? 혹은 먼저 움직이고 있다면?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 미묘한 불일치를 두려워했다. 그 틈새에서 태어난 존재가 바로,‘거울 귀신’이다. 1. 전설의 시작 옛날, 궁궐 근처에 사는 한 궁녀가 있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 궁 안의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었다. 그 거울은 중국에서 들여온 보물로, 맑은 은빛으로 세상을 비추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조금 늦게 따라오는 것을 보았다. 눈썹을 찡그리면, 거울 속의 얼굴은 잠시 후에야 따라 했다. 그녀는 두려워 거울을 덮었지만, 밤이 되자 거울 안에서 속삭임이 들려왔다. > “네가 나야.” >..
밤손님 — 어둠 속에서 문을 두드리는 존재 밤손님 — 어둠 속에서 문을 두드리는 존재 깊은 밤, 모두 잠든 시간. 갑자기 “톡, 톡, 톡.” 낯선 노크 소리가 들린다. 밖에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 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 “누구세요?” > 대답은 없다. 사람들은 이때 찾아오는 존재를 ‘밤손님’이라 불렀다. 그건 사람이 아닌, 죽음이 문을 두드리는 순간이었다. 1. 전설의 시작 조선시대 어느 산골 마을. 겨울밤이면 사람들은 문을 꼭 닫고, 불빛조차 새지 않게 조심했다. 왜냐하면, 문틈 사이로 손을 내미는 밤손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손은 차갑고 마른 손가락을 가졌고, 한 번이라도 그 손을 잡은 자는 그다음 날 죽은 듯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나지 못했다.사람들은 말했다. > “밤손님은 죽은 자의 혼이, > 아직 이승을 떠나지 못해 문을 두드리는..
우물 속 노파 —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지키는 자 우물 속 노파 —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지키는 자 깊은 밤, 아무도 없는 마당 한가운데. 바람 한 점 없는 고요 속에서, 낡은 우물뚜껑이 덜컹, 덜컹 흔들린다. 그리고 낮게 들려오는 목소리. > “그 이름을… 아직 기억하느냐…” 사람들은 말한다. 이 목소리를 들은 자는, 곧 ‘우물 속 노파’를 마주하게 된다고. 1. 전설의 시작 조선시대 어느 시골 마을, 마을 중앙에는 오래된 우물이 있었다. 한여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았고, 겨울에도 얼지 않았다. 그러나 그 우물에서는 밤마다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처음엔 그냥 들짐승이라 여겼지만, 며칠 뒤 어린아이가 우물 근처에서 사라진 후, 그 누구도 밤에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말했다. > “그곳에는 노파가 산다. > 물을 길어간 ..
허깨비(虛魄) |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 속의 괴물 허깨비(虛魄) |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 속의 괴물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본다. 그건 유령도 아니고, 그림자도 아닌데, 분명 ‘누군가’가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 “허깨비가 보였구나.” 허깨비(虛魄)는 귀신도, 요괴도, 사람도 아니다. 그건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환영(幻影)이다. 1. 허깨비의 기원 ‘허깨비’라는 단어는 ‘허(虛, 빔)’와 ‘깨비(魄, 혼)’의 합성이다. 즉, ‘텅 빈 혼’,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비어 있는 영혼을 뜻한다. 옛사람들은 외로운 자, 슬픈 자, 미친 자 곁에 나타나는 허깨비를 “사람의 마음에서 떨어져 나온 혼”이라고 믿었다. 즉, 허깨비는 인간 자신이 만든 요괴였다. 2.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옛날 어느 마을에, 밤마다 들판..
바리데기(捨棄公主) | 저승의 문을 건넌 첫 여신 바리데기(捨棄公主) | 저승의 문을 건넌 첫 여신 누군가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 하지만 그 버림받은 아이가, 훗날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저승의 신(神)이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바리데기, 혹은 바리공주라 불린다. 이 이야기는 한국 샤머니즘의 핵심 신화이자, 인간과 저승을 잇는 영혼의 길잡이에 관한 이야기다. 1. 바리데기의 탄생 — 버려진 공주 옛날, 한 왕과 왕비가 있었다. 그들은 아들을 간절히 바랐지만 연달아 딸만 여섯을 낳았다. 일곱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녀는 또 딸이었다. 왕은 실망했고, 말했다. > “이 아이는 쓸모없다. > 저 산 아래 버려라.” 그렇게 태어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한 아기가 산속에 버려졌다. 그 아이가 바로 바리데기였다. 이름 그대로, ‘버려진 아이’라는 뜻이다. 2...
청각귀(聽覺鬼) | 들리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듣는 자 청각귀(聽覺鬼) | 들리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듣는 자 밤이 깊어질수록, 세상은 고요해진다. 하지만 완전한 정적 속에서도 가끔은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가 있다. “누구야… 거기 있는 사람…” 귀에만 들리는 낮은 속삭임, 옆을 돌아봐도 아무도 없다. 그 소리는 바로, 청각귀(聽覺鬼)의 목소리다. 1. 청각귀의 기원 청각귀는 옛 기록에도 흔히 등장하지 않지만, 민간 설화와 무속 신앙 속에서는 꾸준히 전해져 왔다. 그 기원은 ‘귀의 저주’즉, 남의 말을 엿듣다 죽은 자의 혼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어떤 이는 남의 비밀을 듣고 퍼뜨리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고, 죽은 뒤에도 그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죽어서도 듣는 자, 청각귀라 부른다.” 2. 설화 속 이야기 한 마..
산곡귀(山哭鬼) | 산속의 울음으로 사람을 부르는 요괴 산곡귀(山哭鬼) | 산속의 울음으로 사람을 부르는 요괴 산속의 밤은 조용하다. 그러나 너무 조용하면, 오히려 무섭다. 사람이 듣지 말아야 할 소리가 있다. 그중 하나가, “산속의 울음소리”다. 옛사람들은 그것을 산곡귀(山哭鬼)라 불렀다. 그것은 산이 낸 울음소리이며, 때로는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산의 혼령이었다. 1. 산곡귀란 무엇인가?산곡귀는 한국 전통 설화 속에서 “산속의 정령이 사람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이 요괴는 형태가 없다. 그저 소리로만 존재한다. “산곡귀는 모습이 없고, 그 울음만이 사람을 부른다.” 이 말처럼, 산곡귀는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등산객이나 나그네를 길 잃게 만든다고 전해진다. 2. 전설 속의 산곡귀 옛날 강원도의 깊은 산중, 한 나그네가 길을..